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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지명유래

iammini 2021. 6. 12.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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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동경 126도 37′ 북위37도 28′에 위치.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이다. 리아스식 해안으로 해안선이 길고 복잡하며 섬이 많다. 151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 112개가 섬이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를 인천이 품고 있다.또한 국제공항과, 국제항만, 송도신도시등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젼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왕자 비류는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문학산 부군에 도읍을 정하고 미추홀을 세웠다.
삼국시대에는 각국의 격전지로서 '매소홀','소성'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인천은 우리나라역사의 중심지에 서게 된다.
고려때는 왕의 어머니와 왕비를 배출한 명문지역으로 '7대어향(七代御鄕)'이란 칭송을 듣는다. 이런 이유로 '경원', '인주' 등으로 승격되며 관할역도 확장된다.
조선 태종 13년(14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비로소 '인천'이란 이름이 역사에 등장한다. 여기에서 미추홀의 "미"나 매소홀의 "매"는 물(水)의 뜻이며 "홀"을 성(城)이나 골로 해석되며 "추"나 "소"는 모두 사잇소리 " "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 매소홀이라 불리던 인천의 후기 신라의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소성현(邵城懸)이 된다. 경덕왕이 신라의 제도나 관직을 중국식으로 고치고, 토박이말로 땅이름을 모두 한자어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고려 숙종(1095~1105)에 이르러 소성현은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 승격되었는데 이는 인천이 숙종의 어머니 인예(仁譽) 순덕태후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인종(1122~1146)때에는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 (仁川李氏)의 고향이 됨으로 "인주"(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말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인천은 경원부로 개칭, 승격되었는데, 이는 인천이 7대 어향(御鄕)이었기 때문이다. 7대 어향이란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동안 인천이 왕의 외향이거나 왕비의 고향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초기 태조원년(1392)에 인주로 환원되고 태종 13년(1413)에 이르러 모든 군이나 현에 '州'가 들어 있는 고을을 모두 '山'자나 '川'자로 바꾸는 바람에 인주가 물에 가깝다 하여 '인천'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천의 명칭은 '어진내(仁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인주이씨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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